5. 여행Journey
그것은 흑백영화의 한 장면같았다. 그는 말없이 플랫폼의 벤치에 기대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조금 더웠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햇볕이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 의 옆에는 서류가방처럼 보이는 작은 가죽가방이 있었다. 그는 다 타버린 담배를 바닥에 지져 껐다. 그리고 품 안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꺼내 보았다. 회중시계일것이다. 다시 시계를 집어 넣고 양손을 깍지끼더니 기지개를 폈다. 조금 더운지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어서 부채질을 했다. 그는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나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십대 후반 또는 삼십대 초반 정도일 것이다. 세련된 갈색 수트. 넥타이를 매지 않은 하얀 와이셔츠는 단추 몇개를 풀어놓았다.
그가 가방을 열더니 신문을 꺼내들었다. 무슨 신문인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오래된 신문 처럼. 그는 한참 신문을 보았다. 나는 조금 지루해졌다. 손에 들고 있던 기차 표를 보았다. 오후 네시 십오분 발. 고개를 들어 건너편 역사에 설치된 시계를 보았다. 세시 오십분. 아직 삼십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그는 아직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처음 와보는 역. 큰 역은 아니다. 역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있거나 서 있거나 했다. 사람들이 조근조근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는 건물 같은것도 없었다. 온통 녹색의 초원이었다. 그저 단선 철로만 풀밭을 자르듯 지나고 있었다.
내가 다시 그를 보았을때, 그는 신문을 집어넣고 세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가 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빙긋하고 멋지게 웃었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그가 계속 쳐다보고 있는것 같아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구두소리가 다가왔다. 고개를 들자 거기엔 팔뚝에 '역장'이라는 완장을 찬,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하는 아저씨가 서있었다.
"꼬마야. 앉아도 되겠니?"
역장님이 내게 물었다.
"네. 그치만 저 꼬마 아니에요."
그가 내 옆에 앉으며 웃었다.
"하하하. 미안하다. 이름이 뭐니?"
"제리에요."
"응, 그래, 제리군. 아까부터 보니 저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더구나."
"에에. 보셨나요. 그치만 멋있어 보여서요."
"그렇지. 저 사람은 참 멋진 사람이란다."
나는 역장님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은 말이지, 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떠난 애인을 기다리고 있단다."
"애인을요?"
"약속을 했다나봐, 기다리기로."
나는 그를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그는 회중시계를 꺼내보고 있었다. 역장님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점심시간쯤 이 역으로 찾아오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역에 들어와서는 지금 앉아 있는 저 벤치에 오후 내내 앉아있다 마지막 기차가 지나가면 돌아간단다."
"매일요?"
"그래, 매일매일."
"마지막 기차는 언제 지나가나요?"
"오후 여섯시. 네가 탈 기차 다음 기차지."
"네에... 저.. 그녀가 돌아올까요?"
"그건 나도 모른단다. 솔직히 말하면 돌아오는 기차가 있는지 없는지도.. 그래서 한없이 기다리고 있는거지.."
"얼마나.. 오래..?"
"백년쯤 됐으려나.."
역장님의 말과 섞여 역 구내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지금 네시 십오분발 천국으로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